세월호 학생들 영정 앞에서 (2014.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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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사고 희생자 합동분향소 찾아 헌화하고 지역목회자와 참사 이후 상황, 교회 역할 인터뷰
비가 내린 오후. 분향소로 가는 길은 쓸쓸했다. 곳곳에 문을 닫은 상가들이 눈에 띄었고, 횡단보도에 서서 후보자 홍보에 한창인 봉사자들은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침묵이 곧 운동이 되는 이곳은, 가방을 멘 학생들을 봐도 엄마 손을 잡은 아이를 봐도 슬퍼지는 안산시 단원구다.
아파트 단지마다 희생자를 애도하는 펼침막이 걸려있고, 빛바랜 학생들의 무사기원 현수막은 물에 젖은 채 바람에도 나부끼지 않는다. 길목마다 주민들이 묶은 노란리본과 검은 리본이 길게 엮어져, 타지에서 온 시민의 발걸음을 분향소로 향하게 하고 있었다.
▲ 주민들이 분양소 길목에 메달아 놓은 검은 리본과 노란리본
분향소로 들어서는 순간, 숨이 멎어버렸다. 말이 304명이지 올림픽 기념관을 가득 채운 얼굴들을 마주하게 된다. 이렇게 많은 영정을 본 일이 없고, 이렇게 예쁜 아이들을 본 적이 없다. 이제야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깨닫게 된다. 시청 앞 광장 분향소와는 전혀 다른, 우리를 압도하는 해맑은 시선들과 대면하게 되었다.
6월2일 오후. 교역자회의를 마치고, 강북지방 감리사와 목회자 등 7명은 비가 오는 가운데, 안산 분향소 광장으로 모여들었다. 이곳을 한번 다녀온 안법모 감리사의 제안에 뜻을 함께한 목회자들은, 이미 시청광장과 주민센터 분향소를 통해 헌화했지만도, 성직자로서 희생자들에 대한 마음의 빚은 항상 있어왔다.
분향소에 들어섰을 때, 우리는 머리를 때리는 무엇을 느꼈다. 그것은 충격이었다. 영정의 아이들이 조문객들에게 무언의 말을 걸어오고 있었던 것이다. 목회자들은 소리 없이 들려오는 이야기들을 경청하였다. 그렇기에 그 얼굴 하나하나에 눈을 떼지 못하며 발걸음을 옮기기가 그렇게도 힘들었던 것이다.
망연자실 바라보다 눈시울이 붉어지고, 결국은 흐르는 눈물을 손으로 닦아야만 했다. 국화꽃 한 송이를 손에 쥐고 기도하며, 봉오리 채 피우기도 전에 져야 했던 것은, 교역자인 우리가 울지 못한 새였기 때문이 아닌지 자책할 수밖에 없었다.
▲ 헌화하며 기도하는강북지방 목회자들
이곳에는 희생자들의 부모, 형과 언니, 동생들, 친구들이 남긴 사연들로 가득했다. 그리고 아이들이 좋아하던 간식과 인형 등을 가져온 것이 여러 곳에 쌓여 있었다. 합동분향소는 촬영이 금지 되어 있었지만, 기자 신분을 밝히자 일부 허가해줘서 몇 장을 남길 수 있었다.
이곳의 영정이나 메모 등을 촬영하지 못하게 해달라는 유족들의 부탁이 있었다고 담당자가 정중히 알려왔다. 다음은 카메라를 금지하기에, 수첩에 기록한 것을 지면으로 옮긴다.
“애들아 잘 있는 거지? 조금만 놀면서 기다려. 우리 곧 볼꺼야. 사랑해. 진짜 사랑한다.” (선부동성당 선생님)
“아들아 딸들아 얼마나 외로우니. 이생에서는 못다한 것 이제 천국에서 다시 만나 이야기하자” (인천 마전교회 김유숙 권사)
“날이 갈수록 보고 싶고, 안아주고 싶고, 뽀뽀도 해주고 싶고, 만저보고 싶다. 사랑해 아들…” (아빠가)
“○○야 잘 있지? 엄마는 우리 아들 ○○가 엄마 아들이었다는 게, 너무너무 행복하고 감사해. 엄마는 평생 울 아들 잊지 않을 거야. 사랑해. 행복해야 돼.” (엄마)
“○○아 잘지내고 있지? 너무 보고싶다. 너 좋아하는 녹차 사왔어. 맛있는 거 한 번 못사줘서 미안해. 그리고 사랑해.” (너의 언니가)
“아쉽고 안타깝다. 이젠 어디서 너를 만날까. 그립다. 아빠에게 다정하게 인사하고 소근대던 너의 모습이… 딸아” (아빠)
“이 사회 그냥 두고 보실겁니까? 다음에는 당신 아이 차례일 수 있습니다. 그냥 두고 보시겠습니까? 모두 함께 해주세요. 진상규명해서 사회를 바꿔야 합니다.” (2학년5반 박○○ 어머님 호소문 中)
“○○야 그래도 다음 세상에도 아빠 아들로 태어날거지?” (아빠가)
“○야 우리 애기. 누나왔어. 오늘 누나 생일인 거 알지? 생일선물로 꿈에 한번만 나와주면 안될까?” (누나가)
▲ 영정 한켠에 친구들이 가져온 것들이 쌓여 있다. 네가 좋아하는 걸 가져왔어라고 쓰인 메모와 함께
영정들 사이사이에는 편지, 메모들과 함께 아이들이 좋아하던 과자와 물건, 태권도 검은띠, 추억사진 등이 놓여 있었다.
학생 영정과는 별도로, 희생된 어른들의 영정이 한쪽 벽에 빼곡히 놓여있었다. 어른들 위패에도 많은 십자가가 새겨져 있었다. 그 중에는 장로 두 명의 영정도 눈에 띄었다. 정부가 승선자 명단을 공개하지 않아, 단원고 학생 외의 희생된 성도들의 정확한 상황을 확인할 길이 없다. 얼마 전 국민일보 사회부장도 승선자 명단은 참사 최대의 미스터리라고 언급한 바 있다.
세월호 참사에서 희생된 교회학교 학생은 개신교 학생 76명(단원고74), 카톨릭 학생 17명(단원고17) 도합 크리스챤 학생 93명이 희생되었으며, 안산제일교회에서 고등부 7명이 희생되었고, 와동성당에서는 고등부 10명이 희생되었다. 어느 교회학교 교사는 가르치던 고등부 3명을 모두 잃었다. 목회자와 장로들도 그들의 아들과 딸들을 잃었다.
안산 분향소에서 태어나 처음으로 심령에 울리는 거대한 종소리를 들은 것 같다. 마지막 날 주님 앞에서 이런 느낌이 될까. 아이들이 건넨 무언의 외침과 종소리는 평생의 울림으로 다가올 것이다.
▲ 단원고 학생들 영정 앞에서 (희생된 학생 1/3 이상이 교회학교 학생들이었다)
분향소를 돌아 광장으로 나온 강북지방 교역자들은 맞은편 안산시기독교연합회 부스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곳에서 우리는 감리교 목회자며 연합회 총무로 수고하고 있는 원영오 목사와 더불어 세월호 참사 이후의 상황과 교회의 움직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음은 안산시기독교연합회 원영오 총무와 강북지방 교역자 7인의 담화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안산시기독교연합회 부스는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가
안산시기독교연합회 목사님들이 매일 나와서 예배실에서 유족과 기도해주시고 상담도 하고, 큰일을 해주시고 계십니다. 목회도 하시면서 이렇게 봉사하시니 많이 힘드시지만, 많이 도와주셔서 운영되고 있습니다. 지금에야 좀 정신 차렸습니다만, 초반에는 이리 뛰고 저리 뛰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현재 안산시기독교연합회에는 모든 교단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매일 돌아가며 이곳에 상주하고 있죠. 감리교회는 토요일입니다. 순번을 정해놓고, 임원들은 또 임원들 순번을 정해놓고, 나와서 예배드리고 기도하고, 상담하고, 안내하고, 평상시 기본적인 일들을 하고 있습니다.
안산 분향소 광장 분위기를 전해주세요
솔직히 안산시기독교연합이 유가족들을 상당히 대변하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유가족들이 정부를 신뢰하지 않고, 시나 도를 신뢰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유족들은 소통할 통로가 없게 됩니다.
처음에는 언론을 의지했습니다. 그런데 언론도 전에 보도된 대로 이상한 소리나 하는 바람에… 여기 광장 우리 바로 앞에 KBS 부스도 있었거든요. 그런데 기자가 머리채 잡혀서 저기 유가족 대기실까지 끌려갔습니다. 저 안에 들어가면요, 경찰도 제지 못합니다. 들어가서 뺨 맞고, 결국 119에 실려갔습니다. 그때 유족들이 화가 나서 대통령 만나려고 청와대로 향했던 겁니다.
그래서 이런 일들을 누군가가 가운데서 균형을 잡아줘야 하는데, 촛불집회 중인 34개 단체의 부스도 이곳에 있지만, 그 단체들이 유족들과 함께 움직이려다보니 역부족이 되는 겁니다.
현재 유족들 상황은 어떤지
처음에 일 터졌을 때, 부모들이요. 애를 장례 치루고 왔는데 자꾸 문자가 오는 거예요. 월세 내라. 카드값 내라. 애가 죽어서 이제 겨우 장례 치루고 마음 추스르려 하는데, 이런게 죽게 만드는 겁니다. 엎치고 덮친 격으로 이런 것들 때문에 절망하게 되는 겁니다. 결국 도지사가 긴급지원자금 풀어서 겨우 숨통 트이게 된 거였지요. 복지과에 계셨던 분이 일일이 다 가정마다 찾아다니며 도와드리고 할 때, 저희가 중간에서 역할을 하였습니다.
어제던가? 보험보상이 나갔습니다. 1차로 여행자 보험 든 것 1억 나갔고, 개별적으로 보험 든 것 들어오게 됩니다.
▲ 안산 와동에 위치한 세월호 희생자 합동분양소 앞 광장 전경
연합회 기금 조성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그저 저희가 여기 동산교회 꿈의 교회, 또 제일교회 빛나교회 네 교회가 메모리 처치(Memory Church)이니까, 네 교회가 1000만 원씩, 나머지 스무 개 교회가 200만 원씩. 안산에 있는 교회가 950개 교회입니다. 950개 교회가 먼저 이 유가족들을 위해서 헌신해야죠. 일단 달라고 해서 1억을 모았습니다.
그리고 저번에 한국교회연합으로 기도회 하고 헌금하고… 어제는 명성교회에서 기도회 한다고 우리보고 오라고 해서 갔습니다. 전달식 한다고 해서 봉투를 받았는데, 그냥 빈 봉투를 주더라고요. 뭐 많이 안 줍니다, 기껏해야 천만 원 줄까요?
어제는 대통령도 왔다 갔잖아요. 지금 시국이 내일 모레가 선거인데, 거길 왔다는 자체가… 그 김삼환 목사님도 생각이 있으신 분이면 그러면 안 돼는 거거든요. 왜냐하면 우리는 보수야 하면서, 이런 때 저러는 건 너무 정치적이잖아요. 그게 참 너무 아쉬웠습니다.
안산시 개신교회의 상황
안산에 950개 교회가 있지만 제가 볼 때 700개 교회는 미자립 교회로 보시면 됩니다. 우리 감리교회도 안산에 150개 교회가 있습니다. 안산에 5개 지방이 있어요. 그런데 우리 안산남지방은 30개 교회인데요, 그중에 16개 교회는 미자립교회입니다. 안산은 미자립교회가 많아요.
안산에는 건축하다 경매가 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곳은 교회가 세워지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지금 우리 감리교회 가운데 큰 교회들도 지금 위태위태합니다. 뭐 150억 200억 빚은 보통이고요. 많이 힘듭니다.
이번에 이 일터지고 난 다음에, 작은 교회든 큰 교회든 할 것 없이 – 어떤 교회는 4만원 헌금 나온 거 (그 교회에서는 많이 나온 거에요) – 들고 오고, 이래서 이번에 정말 하나가 됐습니다. 저는 다른 것보다 안산의 교회들이 이번에 하나 된 게 너무나 감사합니다.
안산의 교회학교 피해상황은 어떠한가
36개 교회에서 고등부학생 74명이 희생됐습니다. 희생자가 난 36개 교회의 담임목사들을 모았습니다. 전부 다. 여러분의 교회 집사님, 성도들의 현황을 지금 말하라. 그래서 그분들께서 교회 성도들 현황을 전부 이야기 해주셔서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에 자녀가 희생된 목사님도 두 분 계세요. 딸을 잃은 목사님이 계시고, 아들을 잃은 목사님도 계십니다. 두 분 다 미자립교회를 섬기십니다.
▲ 불러도 대답 없는 친구에게 보낸 메세지
학생들의 트라우마(외상후 스트레스장애) 정도는 어떤지
우리 등대교회는 상록구입니다. 이곳은 단원구고요. 우리 교회의 경우는 단원고에 다니는 애들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 교회 아이의 작년 담임선생님이 이번에 희생됐어요. 그러니까 이게 한 다리만 거치면 오빠의 동생, 친구의 누나 해서 다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 트라우마는 안산에 사는 누구에게나 있는 겁니다.
지금 28%가 결손가정입니다. 안산을 아시는 분들은 아세요. 여기는 이미 결손 가정이 돼서 와요. 편부, 편모가 돼서 옵니다. 거기다가 또 여기서도 갈라지죠.
지금 안산은요, 아이들이 너무 아픕니다. 티는 안 내는데, 아이들이 너무 힘들거든요. 그런데 이 아이들을 양지로 끌어낼 수 있는 길은, 그냥 애들이 좋아하는 가수들하고, 애들 치료는 그냥 애들끼리 놀게 하는 게 제일 빨라요.
학생들 트라우마에 대한 앞으로의 계획
뭐 너 그림 그려봐… 이런 게 너무 탁상공론이라는 거지요. 그래서 단원고등학교 아이들 중심으로 저희가 힐링콘서트를 … 그것을 역으로 기획사 쪽에서 먼저 제의해 왔습니다. JYP나 YG나 SM에서도 우리에게 요청을 해왔어요.
목사님 우리가 힐링 콘서트를 하는 게 어떨까요? 유명한 XO, 2NE1, 소녀시대. 얘네들이 와서 안산에서 아이들과 함께 놀아주겠다는 거에요. 이걸 마다할 일이 없고요. 그게 오히려 청소년 사역하는 입장에서는 판단하기에는, 아이들한테 그만한 힐링이 없을 거라고 봅니다. 안산대학교 기념관 거기가 2500석인데 8월30일 걔네들이 와서 공연합니다. 생존자 아이 몇을 하루 종일 힐링하는 프로그램도 방송으로 제작할거에요. 드라마틱하게 만들어서 대리 치유하게 하는 거죠.
가장 큰 피해를 입은 단원고등학교의 상황
지금 단원고는 한 학년이 없어졌습니다. 근데 문제는 긴급재난지역으로 선포된 후, 애들이 전학도 못가요. 상황이 이를테면, 오빠가 죽었어요. 근데 여동생이 전학시켜 달라 하는 거예요. 안 시켜주니까, 학교를 안 가요. 안 가겠다는 겁니다. 교사요? 교육청에서 이곳으로 발령 냈습니다. 교사가 13명이 숨졌잖아요? 교사가 없잖아요? 근데 문제는 지원을 안 와요. 이리로 발령을 냈는데 교사들이 오질 않습니다.
교사 3명이 생존했지요. 한 명은 교감선생님, 자살하셨죠.
그렇게 된 배경에는, 사실은 단원고등학교가 그날 제주도로 갈 게 아니었어요. 그날은 인천, 광명, 수원 이렇게 세 학교가 예약이 돼 있었습니다. 그런데 단원고등학교에 오신 교감선생님이 오신지 얼마 안 되신 분입니다. 이분이 수완이 좋으셨던 모양이에요. 교감선생님이 그걸 따낸 겁니다. 이날, 단원고가 그날 가는 걸 따자마자 막 박수치고 학교가 환호했었지요. 우리 교감선생님 최고라고. 그런데 이 사건이 터졌잖아요. 이 교감 선생님이 자기 탓인 것 같으니, 돌아가신 겁니다. 그런데 두 분 선생님 생존하셨잖아요. 한 분은 사표내고 사라지셨고요, 또 한 분은 사표도 안 내고 사라졌습니다.
단원고 교사와 학생들은 어떻게 지내는지
1학년 3학년은 수업을 하고 있습니다. 2학년은 반이 없어졌으니까, 일단 교사를 충원시키려고 한 거였죠. 지금 없어도 큰 문제는 없습니다. 지금 있는 교사로도 충분합니다. 왜냐하면 사실은, 학년이 없는데요. 2학년이. 지금 두 반 이에요. 2학년은. 그것도 억지로 나눠서 두 반이고요. 합반해서 두 반 인데, 지금은 힐링 프로그램 하느라 제대로 수업도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특별법을 만들어서 이 아이들에겐 어드밴티지를 주자, 아이들이 공부를 할 수 없으니까. 그런데 도움을 주는 건 좋은데,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반대한다고 하네요. 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 단원고 이웃 학교 여학생 편지
단원고등학교에 대한 안산시기독교연합회의 지원활동
학교는 완전히 풍비박산이었습니다. 그런데 거기다 대고 매스컴들이 들어와서 뭐 심정이 어떠니 이러고 있었으니, 그래서 저희가 한 일이 뭔지 아십니까? 단원고 가서 경비를 서는 일이었습니다. 학교가 요청해왔지요. 경비 서달라고. 메스컴 좀 막아달라고.
지금 학교는 많이 아픕니다. 그래서 학교가 정상화 되는 기능을… 지금 가려져서 학교 얘기는 못하고 있어요. 그래서 저희가 이스라에이드를 학교에 투입했는데, 이게 절차가 있답니다. 교육청에서 도장 찍어야 되고, 이래가지고 지금 못 들어가고 있습니다.
이스라에이드 (IsraAID)
옆에 계신 이분들은 ‘이스라에이드’라고 이스라엘의 NGO. 민간구호단체입니다. 이스라에이드(IsraAID). 이스라엘 사람들입니다. 저기 계신 ‘굿피플’이라고 우리나라 크리스챤 NGO와 함께 일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분들 활약이 클 거에요. 아이티라든지, 후쿠시마라든지, 911테러라든지, 현장에 들어가서 직접 현장 사람들을 힐링하는 PTSD 후원단체입니다. 안산의 교회들을 직접 탐방하며, NGO분들과 힐링 프로그램을 함께 진행 중에 있습니다.
생존한 아이들을 위한 대책이 시급하다
지금 놓치고 있는 것이 우리가 바다에서 희생된 아이들만 보고 있는데요, 생존한 아이들은 더 힘들어합니다. 내가 죽였다는 거예요. 한 아이는 친구가 손잡고 배 위까지 올라왔답니다. 올라왔는데 깜박하는 사이에 없어졌어, 얘가. 자기만 살은 거예요. 얘는 떨어졌겠죠 어디. 끝에 달려 있었으니까. 목사님 딸의 경우는 손이 다 헤져가지고, 살려달라고 얼마나 그랬으면… (원영오 목사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니까 그 현장에 지금 생존해있는 아이들이 있었잖아요. 아이들이. 그러니 이게… 이게, 트라우마죠. 이건 평생… 이거 치료해야 합니다. 그걸 방치해 놓고 죽은 아이들만… 산 아이들에게는 지금, 학교 다녀라. 너 치료 받을래? 이건 너무 소극적이라는 거죠. 우리가 애들을 놓치고 있는 겁니다.
애들은 지금 방치되고 있거든요. 그래서 이스라에이드하고 우리는 생존한 아이들에게 우리라도 집중하자. 교육청에서 전학도 불허하고 있고. 그런 건 있어요. 관리가 안 되니까. 좋은 의미로는 여기 있으면 치료하고 관리를 시키는데, 어디로 가버리면 관리가 안 되니까. 이민 가버리면 안 되잖아요. 그런데 문제는 뭔가 하면, 당사자도 당사자이지만, 죽은 아이의 동생, 오빠 뭐, 제가 안산대학교 강의하고 있는데, 안산대학교에도 희생된 아이의 오빠들 누나들이 있습니다. 얘네들은 지금 학교도 그만두고, 다 가난한 아이들인데…
▲ 세월호 희생 학생 영정 앞에 헌화하며 기도하는 서울연회 강북지방 목회자들
정부에서 추진하는 상담 프로그램을 유가족이 거부한다고 들었는데
거부한다기보다는 교육청에서 대부분 상담을 관여해요, 그래서 단원고등학교에 상주시키고 또 시에서는 상담요원을 동사무소마다 전부 배치시켜놨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교육청이나 도나 시가 생각을 잘못하고 있는 게, “자, 여기 상담센터 개설했습니다. 어서 오세요.” 누가 오겠습니까? 아무도 안 옵니다.
대부분 탁상공론이라는 거죠. 지금 감리교단에서도 감독회장님 직권으로 안산 명성교회라고 단원고등학교 옆에다가 힐링센터를 개설했어요. 연세대학교 팀하고 목회상담학 교수 함께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거길 누가 찾아가냐고요. 내가 유가족인데, 내가 힐링 하려고 가냐고요. 안갑니다. 나는 괜찮다고 그래요 다들. 그러니까. 그냥 교회로 찾아가야 되는 겁니다. 교회 가서 성도들 또는 유가족들, 이런 사람들을 그냥 힐링 해줘야 돼요. 아니라는 사람들이, 가보면 진짜 심각하거든요.
일을 하면서 가장 아쉬웠던 점은
장례식장도 모자랐잖아요. 안산은 72구밖에 수급이 안 됩니다. 그런데 아이들 갑자기 확 올라오니까, 공식적으로 교회들에 공문을 띄웠지요. 교회가 열자. 아이들 장례식 장소를 교회가 열자고 제안했습니다. 여러분 정말… 제가. 우리 교회는 작아요. 너무 작기 때문에 장례식장을 할 수 없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교회 작은 것을 한탄했어요.
큰 교회 돌아다니면서 목사님들 설득을 시키는데, 어떤 분들은 하겠다고 하지만 대부분의 목사님들은 주일에도 시신이 있어야 하니까 – 물론 보건복지부에서 냉동고를 주겠다고 했어요. 아이들 넣을 수 있게. – 주일까지 둬야 하니까. 그게 싫다는 겁니다. 냄새가 난다는 둥, 사람들이 싫어한다는 둥, 어떻다는 둥. 그래서 결국은 네 교회만 하기로 했어요. 정말… 교회가요. 그래서 제가 막 화를 냈습니다. 아니, 살았을 때는 우리교회 오라고 막 그래놓고는, 죽었다고 말이지, 이제 냄새 난다고 가라고… 이게 교회냐 이게. 우리 교회들의 현 주소가 이렇습니다. 그래서 네 교회가 장례식장하기로 준비하고 기다렸는데, 마침 그때 기상여건이 안 좋아져서 아이들이 늦게 올라왔어요. 그러는 바람에 교회는 열지 않아도 됐습니다만… 너무 가슴이 아픕니다.
마지막으로 바라는 것은
안산의 아이들은 그런 트라우마를 가질 수밖에 없는 모든 환경과 조건에 처해 있습니다. 유가족은 정부에서 보상을 합니다. 그리고 교회는 유가족을 위해 쓸 수 있는 재정이 못됩니다. 최소한 30억이에요. 천만 원씩이라고 해도 30억입니다. 300명이 넘는데,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유가족이 아니지요. 한국교회가 품을 수 있는 건, 유가족이 아닙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장학재단, 학교정상화를 위해서 투자하고 힐링 프로그램을 위해서 전문가를 상주시킨다든지, 아이들에게 장학금을 준다든지 이런 일에 쓸 수밖에 없습니다.
고양시기독교연합회 같은 경우는 이번에, 거기도 큰 사고가 났잖아요. 그래서 저희도 그곳을 방문했습니다. 가서 보니 안산 단원고에서 우리만 당한 게 아니라, 이게 광명에서도 일어날 수 있었고, 수원에서도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디서든지 이런 일이 벌어지면, 이게 교회는요, 다른 데는 몰라도 교회는 좀 하나가 돼야 합니다. 교단들이 그런 걸 떠나 좀 같이 움직여 줬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 왼쪽상단부터 안산시기독교연합회 총무 원영오 목사, 강북지방 감리사 안법모 목사(고백교회), 새생명교회 강석주 목사, 한빛교회 이홍원 목사, 두손교회 최성겸 목사, 주영광교회 이상필 목사, 토기장이교회 신상엽 목사, 청장년선교회 강북지방연합회장 박은석 권사(수유교회)
맺는말 – 강북지방 안법모 감리사
지금 우리 감리교회도 성금을 모으잖아요. 여러 루트가 다 달라요. 우리도 그 문제점들을 이미 알고 있지만, 성금이 모여져도 집행하는데 참 애로점이 많습니다. 우리도 연회차원에서 – 지난번 연회 때 우리가 이것을 교단적으로 한 번 해보겠다. 본부에서 해보겠다 했지만, 고민스러워요. 이것을 모아 누구에게 줄 것인가. 희생자 가정에게 준다면, 아이를 주는 게 아니라 아이의 부모나 대리인을 주게 됩니다. 그런데 별거 또는 이혼한 부부사이의 골이 깊고, 유가족들도 서로 갈등합니다.
그럼 돈을 모아서 누굴 줄 것이냐. 이걸 물어야 되거든요. 여러 루트에서 보니까. 이것은 지금 우리가 생각할 때도 문제가 있고, 또 사회의 바깥에서 볼 때도 우후죽순으로 여기저기 기금을 모으고 있는데 하도 많다보니, 투명성 문제도 그렇고 이게 어떻게 쓰이는가하는 집행의 문제도 말썽이 많은 겁니다. 앞으로 이것이 상당한 문제로 부각될 것입니다.
저도 생각해볼 때, 사회적으로나 국가적으로도 재난시스템이 제대로 안 돼 있고 통합이 안 돼 있습니다. 그렇다보니까 중구난방이고 결집력도 약한 시스템을 가지게 된 거죠. 우리 교회들도 이런 식으로 문제점들이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박은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