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관(言官)과 사관(史官)의 전통 (2015.10.19)

 

▲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이 된 조선왕조실록

 

예로부터 우리나라에는 진위를 분별해 바른 말을 전하는 두 가지 전통이 있어왔는데, 하나는 사헌부(司憲府)와 사간원(司諫院)을 중심으로 한 언관(言官)의 전통이고, 다른 하나는 춘추관(春秋館)과 실록청(實錄廳)을 중심으로 한 사관(史官)의 전통이다.

 

이 전통은 고려시대로부터 비롯됐는데, 사헌부는 감찰·사법기능도 담담하며 사건을 심리·탄핵하고 국왕에 대해서도 극간(極諫)하는 것을 본령(本領)으로 삼았고, 춘추관은 국가기록과 국사편찬을 담당하는 사관의 소임이 ‘임금의 언행과 정치, 백관의 진위와 잘잘못을 모두 기록하여 후세에 바로 보이는 것임’을 이미 800년 전 고려사(高麗史)에 명시하고 있다.

 

▲ 일제 조선총독부가 조선왕조실록을 수탈해갔던 오대산 사고(史庫)의 불타기 전 모습

 

사관의 임무는 매일매일 시사(時事)를 있는 그대로 기록해 사초(史草)를 작성하고 정리하는 일이었다. 이는 오늘날 대한민국 기자(記者) 정신을 사관의 전통과 분리될 수 없는 것이, 사관과 언관의 전통은 불가분의 관계이기 때문이며, 기자가 기사를 쓰는 자체가 시대에 간언하며 사초를 남기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언관과 사관은 권력자의 행동을 기록하고 탄핵하며 그 치부라 할지라도 자세히 기록해 후세에 전하는 역할을 하기에, 비록 왕이라 할지라도 예외가 없었다. 때문에 많은 언관과 사관들이 정언(正言)을 위해 목숨을 바쳤으며, 그 누구라도 경거망동하지 못하게 하는 장치가 언관과 사관을 통해 한국사에 가동된 것이다. 특히 아무리 왕이라 할지라도 역사를 편찬하는 사관에게 함부로 할 수 없는 것이 역사의 전통으로 굳혀졌으며, 사초(史草)를 빌미로 사관을 억압하는 왕을 폭군이라 명하고 탄핵의 대상으로 여겨왔던 것이다.

 

▲ 국립 4.19 민주묘지에서 기독교대한감리회 서울연회 강북지방이 4.19 구국기도회를 개최하고 있다

 

때문에 독재가 판을 치는 형국에 모두가 불의한 권력 앞에 굴복한다 할지라도, 언관과 사관의 전통을 따르는 기자와 역사가는 권력 앞에 도끼와 붓을 들고 상소하는 맥을 이어가는 것이다.

 

4.19 혁명 당시에도 학생, 시민들과 함께 동참하고 교수선언과 교수시위에 앞장섰던 교수들 역시 철학과 역사학 교수들이었으며, 오히려 법학과 정치학 교수는 한 명도 동참한 바 없었다.

 

▲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를 이어가는 학계, 시민사회, 독립운동가 후손들

 

10월18일 국민대, 덕성여대를 비롯한 서울 소재 13개 대학 역사학 전공 교수 71명과 가톨릭대, 경인교육대를 비롯한 경인지역 9개 대학 역사학 전공 교수 27명이 “국정 교과서는 올바른 역사 교과서가 아니다” 선언하며 역사 국정교과서 집필을 거부하였다. 이에 앞서 서울대 역사 교수 34명, 동국대 교수 65명, 고려대 교수 160명이 한국사 국정교과서 반대성명을, 특히 고려대와 부산대는 역사학 교수 전원이 국정교과서 집필을 거부하는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또 전국의 역사교사 2,255명이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 선언을 발표하였고, 독립운동가 후손들과 독립운동 단체들도 잇달아 기자회견을 이어가고 있다.

 

박은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