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지명을 연구하는 관점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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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사를 연구하려면 우리 역사에 대한 이해와 함께 고고학, 고미술, 민속학 등 관련 여러 분야의 지식이 모두 있어야 하지만, 그 중에서도 지명에 대한 조사와 연구가 꼭 필요하기 때문에 지명과 향토사는 서로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원래의 지명 속에는 지방의 역사와 문화가 숨쉬고 있고, 그 지명만이 간직해온 특별한 의미가 스며있기 마련이다. 지명을 통해서 우리는 문헌에는 나와 있지 않은 새로운 역사적 사실이나 숨겨져 있던 문화유산을 찾아낼 수도 있고, 우리 조상들의 생활상과 풍속, 신앙을 알 수 있으며, 고유문화 속에 스며든 외래문화의 영향도 살필 수가 있다.
▲ 서울시청 지하 군기시 유적전시실에 보존 중인 문화유적 지층 (땅 속 시대별 지층 속에서 문화유산이 발굴된다)
원래 한반도의 지명은 먼저 순수한 우리말 이름이 먼저 생겨났고, 이를 표기하기 위해 한자의 음과 뜻을 빌린 이두명이 생겨났으며, 중국을 사대하게 되면서 점차 한자명으로 기울어지게 되었다. 그러던 것이 일제강점기 36년을 지내오면서 일제의 우리문화 말살정책으로 인한 지명의 흐트러뜨림이 있었다.
1910년 8월29일 일본제국 단독으로 조약서를 작성하고, 3년 전 대한제국 고종황제에게 빼앗은 어새로 날인했던 한일병탄 이후, 일제는 1914년 조선의 행정구역개편을 통해 한반도의 지명들을 바꾸기 시작했다.
우리 터전의 문화전통을 간직한 한반도의 지명들을 일본이 강제로 행정구역개편을 하며 바꿔버렸던 이유는, 효율적인 식민통치를 위한 것 말고도 우리민족의 정신과 문화전통을 말살시키려는 의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일제잔재] 서울 지명 35%가 일본식 [연합뉴스]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08/11/0200000000AKR20170811046200055.HTML
일제는 서울의 심장부인 경복궁에 홍례문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조선총독부를 세웠으며 광화문을 이전시켰다. 창경궁을 동물원으로 만들고, 전국의 주요 산과 해안에 기를 끊는다며 쇠말뚝을 박고, 이 땅의 이름마저도 바꿔버리고만 것이다. 일제는 조선의 법정리 명칭을 변경하면서 행정구역개편과 함께 읍면의 호칭도 상당히 바꿔버렸다.
▲ 1912년 일제가 조선총독부를 짓기 위해 경복궁 홍례문과 행각을 헐어내고 기초공사를 하고 있다.
이에 지명을 바라보는 관점과 개정하는 문제에 대해 도수희 교수(충남대학교 문과대)의 이야기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한자지명으로 고유지명인 ‘한밭’에서 파생한 ‘大田’이기는 하지만 500년 이상을 ‘한밭’과 공존해왔고, 근래에 와서는 ‘한밭’보다 ‘大田’이 행정지명으로 공식화됐기 때문에, 이것을 고유지명 ‘한밭’으로 바꾸려면 현실적으로 많은 애로가 뒤따를 것이다.
만일 모든 공문서에서 ‘大田’을 고유지명 ‘한밭’으로 바꿈이 마땅하다면, ‘공주(公州)’는 ‘곰나루’ 혹은 ‘곰골’로, ‘전주(全州)’는 ‘비사벌(比斯伐)’로, ‘부여(夫餘)’는 ‘소부리(所夫里)’로, ‘광주(光州)’는 ‘무진주(無珍州) 또는 무돌골‘로, ’강릉(江陵)’은 ‘아슬라(阿瑟羅)’로, ‘수원(水原)’은 매홀(買忽)로, ‘인천(仁川)’은 ‘미추홀(彌鄒忽)’로 바꾸는 거국적인 고유지명 되찾기 운동이 일어나야 한다.
그러나 이는 국가적인 사업으로 이와 같은 우리의 이상이 실현되려면 막대한 경제적 뒷받침과 인력 그리고 상당한 시일이 필요한 것이라 하겠다.
요컨데 그것이 고유지명이든 한자지명이든 오랫동안 사용하여 온 전통지명은 무형문화재이다. 문화재는 장구한 세월에 걸쳐 전해져 오면서 누대로 애지중지하며 정성껏 간수한 조상들의 얼이 깃들어 있기에 그것은 훼손됨이 없이 고이 간직하고 길이 보호하여야 할 더없이 귀중한 존재인 것처럼, 고지명(古地名) 역시 오랫동안 민족의 입에 회자(膾炙)되어 왔기에 그 속에는 민족혼이 대대로 스며들어 있는 것이다.
▲ 1770년 한양도 – 당시 한양도성과 사대문, 관청 등과 한강, 청계천, 삼각산, 백악산, 인왕산 등을 간결하게 묘사하였다.
때문에 공인할만한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정통지명은 물려받은 대로 보존하여 후대에 물려주어야 하는 책임이 우리에게 있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지명 가운데는 정통에서 한참을 벗어나 왜곡돼왔던 것이 많이 드러나고 있다. 따라서 분명히 잘못된 지명들은 충분히 검토하여 신중하고도 남김없이 바꿀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 이는 앞으로 우리가 인내를 가지고 연구하며 민관이 정책을 통해 과감히 바로 잡아야 할 중대한 사업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서울문화원 박은석 기자